전체 글1047 비요일의 치즈 냄새 봄비스러운 비가 내린다. 1월보다 추운 2월이었는데 이제 좀 날이 풀리려나? 빼꼼 창문을 연 순간 얼음같은 공기가 쏜살같이 파고든다. 아직은 겨울인갑다.. 뜨끈한 수프와 치즈 잔뜩 들어간 음식이 당분간은 계속 어울리는. 말 나온 김에 오늘은 마카로니 앤 치즈를 먹기로 한다. 요즘 (또) 다이어트 한다고 샐러드를 자주 먹는데 날씨가 이러니 더더욱 먹기 싫은 것. 이런 날엔 떡만두국 아닌가요! 샐러드 따위가 웬 말인가. 어서 봄이 와야 상큼 아삭한 샐러드맛을 좀 즐기며 먹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 닭가슴살 구이는 우리집에서 제일 자주 해먹는 메뉴가 아닐까 싶다. 소스를 만들고 (올리브기름+ 발사믹 식초+ 다진 마늘+ 설탕+ 소금+ 후추+ 허브+ 머스터드) 발라 굽기까지 15분이면 넉넉하기 때문에. 자취 시.. 2021. 11. 1. 치킨을 기다리는 피클 오이를 어제 샀어야 했다. 피클 담그기 좋은 품종이 오랜만에 있었는데 그만 깜박 하고선.. 오늘 다시 갔더니 그새 동이 났다. 터키상점에서 비슷한 걸 골라오긴 했으나 왠지 미심쩍다. 어차피 주인공은 콜라비와 무가 될테니 오이는 쪼매만 넣어야겠다. 스물 일곱에 독일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식재료에 대한 나의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래 무식한데다 한국에서 못 보던 것들까지 더해지니 장 보러 가는건 일종의 탐험이었고, 기름, 식초, 곡물, 각종 향신료의 다양함 앞에서 날마다 동공지진이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다 먹을 일이 있기는 할까? 싶은게. 지금은 집에서 쓰는 식초만도 대여섯 가지는 되는걸 보면 내 식생활도 그동안 조금은 변했나보다. 도시락에 곁들일 채소를 따로 조리하기 귀찮을때 .. 2021. 11. 1. [Greece Santorini #3] 노을 지다 산토리니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아 (Oia) 마을, 그 중에서도 석양이다. 혹자들이 세계 최고의 노을이라 감히 말한다는. 해질녘이 되자 모여드는 사람, 사람들. 타 들어가던 태양이 이윽고 에게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카메라 촬영모드를 'sunset' 으로 바꾸었다. 저거구나... 이 인파를 여기까지 불러 모은 놈의 정체가. 어디에서도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정적...고요. 어쩌면 저거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가 마흔 몇 번 의자를 옮겨 가며 봤다던, 가슴 아린 그 노을이...저것인지도. 이 순간을 위해 넉넉히 남겨둔 메모리건만 선뜻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마음이여. 찍는 순간 저 모습은 내 눈을 떠나 그렇고 그런 노을풍경으로 기계 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 머리를 피해 몸은 이.. 2021. 11. 1. [Greece Santorini #2] 그리고 뜨거운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1. 11. 1. [Greece Santorini #1] The Big Blue 가!자! 가자! 포카리스웨트 섬으로! 일반페리로 4시간 걸리는 이 거리를 쾌속엔진 장착한 '날으는 돌고래' (Flying Dolphine) 호가 2시간 만에 사뿐 당도시켜 준다. 화산섬이라더니 과연 신기하게 생겼다. 음료수 광고에 나오던 그 풍경은 버스로 제법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가드레일도 제대로 없는 아찔한 해안 낭떠러지 길. '운전 중 기사에게 말 걸지 마시오' 큼지막하게 적혀 있으나 아무도 말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 자발적으로 마구마구 말씀하시는 아저씨. -.- 자, 여기가 거긴데. 무슨 생각이 드니.. 어릴 적 쓰던 크레파스 상자 생각이 나. 많이 쓰는 색만 몽땅해져서 들어 있던. 이 곳 아이들에게는 두 배는 긴 파란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온 blue란 blue만 골라 모아 모두 여기에다 쏟.. 2021. 11. 1. [Greece Crete #3] 유적, 혹은 돌덩이 내 비록 방문동기는 허술했으나 구경만은 성심껏 하여 주리! 아침 일찍부터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했다. 유적이란 자고로, 모르고 보면 돌덩이요, 알고 보면 살아 숨쉬는 전설이라. 자, 신화를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고. 아...오...아아니 이것은...!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 알고 봐도 돌덩이인 경우가 간혹 있다고. -.-;; 그러나 이 곳은, 적어도 솔직하다. 난해한 예술들이 흔히 그러하듯 감동 받길 강요하지도 않고, 무감동인 이유를 여행객의 '고매하지 못한 소양' 탓으로 돌려 실망한 객들을 두 번 죽이는 비겁한 짓도 하지 않는다. 뻔뻔하리 만치 꾸밈 없이 뒹구는 돌덩이들. 복원이랍시고 인공냄새 풀풀 나게 해놓고 푼돈 받아 챙기는 것 보다야 얼마나 덜 깨는가. 여행이 고달파지는 이유를 .. 2021. 11. 1. 이전 1 ··· 163 164 165 166 167 168 169 ··· 175 다음